[스크랩] 함형수 - 해바라기의 비명(碑銘)
2010. 10. 19. 14:42ㆍ시인촌
해바라기의 비명(碑銘)
함형수(1914∼1946)
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(碑)돌을 세우지 말라.
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.
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.
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.
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.
태양처럼 이글거리는 해바라기와 불꽃처럼 타오르는 보리밭. 반 고흐의 열정과 꿈과 스스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삶 그려지는 시. 시인 역시 끓어오르는 순정과 뭇 생명 사랑 주체 못하는 세상에 이 시 한 편 짧고 강렬하게 각인시켜 놓고 갔거늘. “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”이라며 맥하(麥夏)에 서둘러 떠나는 당신. 보리밭 푸르게 일렁이는 사람 살 만한 세상 굽어보는 해바라기 순열한 꿈과 사랑으로 피어오르소서. <이경철·문학평론가>
출처 : 碧 空 無 限
글쓴이 : 언덕에서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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